세계최초 흑인 대통령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에 대하여!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 (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년 7월 18일 ~ 2013년 12월 5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평등 선거 실시 후 뽑힌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그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지도자로서 반아파르트헤이트운동 즉, 남아공 옛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지도했다.
 
반역죄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나, 26년 만인 1990년 2월 11일에 출소했다. 1994년 4월 27일 실시된 선거에서 ANC는 62%를 득표하여 ANC의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는 1994년 5월 2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결성하여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는 과거사 청산을 실시했다. TRC는 성공회 주교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참여하였으며, 수많은 과거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조사하였다. 인종차별 시절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투쟁을 화형, 총살등의 잔악한 방법으로 탄압한 국가폭력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친다면 사면하였으며, 나중에는 경제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피해자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피해자 무덤에 비석을 세워줌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잊혀지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저서로 뉴욕 타임스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에 선정된《자유를 향한 긴 여정》이 있다.
 
2013년 12월 5일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1]
 

 

 

생애[편집]
 

 


로벤 섬의 돌무덤
유년기 : 1918-1936[편집]
 
1918년 7월 18일 그는 남아공화국 케이브 지방의 일부였던 움타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음베조에서 태어났다.[2] ‘롤리흘라흘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은 코사족 구어체로 ‘말썽꾸러기’라는 의미이며[2], 이후에는 그의 씨족명인 ‘마디바’로 알려지게 된다.[3] 1832년에 사망한 그의 증조부 응구벵쿠카가 오늘날의 이스턴케이프 주에 있는 트란스케이 지역[4] 에서 인코시 엔크훌루 혹은 군주로서 템부 족을 다스렸던 추장이었다.[5] 만델라라는 이름의 증조부 아들 중 한명이 넬슨의 할아버지가 되었으며 그의 성씨의 출처가 된다.[6]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 주 트란스케이를 통치한 템부 부족의 분파에 속한다.[7] 만델라가 익시바 씨족(소위, 왼손잡이 집이라고 불리는)의 왕의 하나 밖에 없는 부인에게서 태어난 독자였기 때문에, 왕가의 분가된 후손들은 왕위를 물려받는데 있어서 귀천 상혼이었으며, 부적격자였지만, 세습이 가능한 왕손으로 인정을 했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임자가 백인 판사로부터 부패 혐의로 기소되자, 지역의 족장이자, 왕손이었던 그의 부친 가들라 헨리 음파카니스와가 1915년 군주의 자리에 지명을 받았다.[8] 1926년 가들라도 부패혐의로 퇴출당하였지만, 넬슨은 판사의 비합리적인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그의 직위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들었다.[8]
 
반 아파르트 헤이트의 투사[편집]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재학 중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수많은 사상을 접했으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정치적 식견을 공고히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재학 중 1944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에 들어가 그 청년동맹을 설립하고, 청년동맹 집행 위원을 취임하여 반 아파르트 헤이트 운동을 벌인다. 이후 1950년, ANC 청년동맹 의장으로 취임한다.
 
1952년 8월에 요하네스버그에서 올리버 탄보와 함께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다. 그 해의 12월에 ANC 부의장 취임하여, 1961년 11월, 움콘트 웨 시즈웨(민족의 창)라고 하는 군사 조직을 만들어 최초의 사령관이 된다. 그러한 활동으로 1962년 8월에 체포된다. 1964년에 국가 반역죄 종신형을 선고받아, 로벤 섬에 수감되게 된다. 1982년, 케이프타운 교외의 포르스모아 형무소로 이감되었다.
 
민족 화해의 상징[편집]
 

 


넬슨 만델라와 빌 클린턴
1989년 12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와 회담을 통해, 1990년 2월 11일 석방된다. 석방 후 ANC 부의장으로 취임한다. 데 클라크와 예비 회담 시에는 ANC 대표로 참석했다.
 
1991년, ANC 의장에 취임하였고, 데 클레르크와 협력하여 모든 인종 대표가 참석한 민주 남아공화국 회의를 두 번 개최하였고, 또한 다당 협상 포럼을 열어, 임시 정부 잠정 헌법을 만들었다. 이 10월 5일, 베이징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993년 12월 10일에 데 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94년 4월 남아공화국 최초의 모든 인종이 참가 총선이 실시되었다. ANC가 승리하고, 넬슨은 대통령에 취임했다. 잠정 헌법의 권력 분배 조건에 따라 연립 정권을 세워 국민 통합 정부를 수립했다. 넬슨은 민족 화해 협력을 호소하면서, 화해와 관용이라는 똘레랑스 정신을 기초로 인종차별 체제 하에서 흑백의 대립과 격차의 시정하려고 노력을 했고, 흑인 간 충돌의 해소, 경제 불황을 회복하는 부흥개발 계획 (RDP)을 공개했다.
 
1997년 12월 ANC 전당 대회에서 넬슨은 의장의 자리를 부통령 터보 음베키에게 양보한다. 1999년 2월 5일 국회에서 마지막 연설을 했다. 같은 해 열린 총선을 계기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편집]
 
2000년 1월 19일에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처음으로 연설을 실시했다. 2001년 7월 전립선암이 발견되었고, 7주간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2005년 1월 7일에 전처 위니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마카토 만델라가 에이즈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공개했다. 유네스코 친선 대사로 일을 했다.
 
2010년 6월 11일에 열린 FIFA 월드컵 남아공 대회의 개회식에 참석하려 했지만, 전날 증손자가 교통 사고로 사망하여 참석을 포기하는 대신 영상 메시지를 보냈으며, 폐회식에는 참석을 했다. 이때 이후 공개적으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90세를 넘어 고령 몸에 쇠약해지기 시작했으며, 2012년 12월 8일에는 폐 감염으로 인해 수도 프리토리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2013년 4월 6일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을 했다. 그러나 2013년 6월부터 상태가 악화되었고, 감염이 재발되어 6월 8일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2013년 6월 23일 남아프리카 대통령궁은 넬슨이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고 발표했다. 그후 넬슨의 용태는 안정되었고, 7월 18일 병실에서 95번째 생일을 맞았다. 딸 인사는 7월 16일에, "헤드폰을 착용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 웃음을 보였다"라는 모습을 전했다. 넬슨의 생일에 맞춰 2013년 7월 18일에 국제 연합은 본부에서 "넬슨 만델라의 날" 행사를 열고 넬슨의 공적을 기리는 것과 함께 회복을 기원했다.
 
2013년 12월 5일 95세로 자택에서 가족들의 품에서 서거하였다.[9] 그의 서거는 제이컵 주마 대통령에 의해서 발표되었다.[9][10][11]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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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을 합시다 / 헌혈의 장점 , 단점

자유로운 2014. 2. 11. 16:55
헌혈을 합시다 / 헌혈의 장점 , 단점

 

 

헌혈(獻血)은 혈액 기증자가 혈액 은행같은 수혈을 하는 곳에 보관하기 위해 피를 빼는 과정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선 대한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 두 곳에서 헌혈 사업을 하고 있다.
 

 


헌혈
헌혈은 근처 헌혈의 집에 가거나, 혹은 단체 헌혈 때 할 수 있다. 단체 헌혈은 대한 적십자사가 일상 생활에서 약속 없이 머무를 수 있는 상점가, 대기업, 대학교, 고등학교, 군대, 지역 교회처럼 편리한 곳에서 현혈하기 위해 세워진 행사이다. 헌혈 캠페인에서는 용도에 맞게 개조된 헌혈버스가 헌혈 운동에 많이 쓰인다.
 

 


 

과정[편집]
 
헌혈 과정은 기증자 적합선별, 실제 헌혈, 짧은 회복 시간을 포함한다. 이것은 전체 헌혈과 (오직 혈장만 헌혈한) "성분 헌혈" 모두에 적용된다.
 
헌혈 장소에 도착하기 앞서[편집]
 
헌혈 기증자는 헌혈을 하고 난 뒤에 일시적으로 몸이 약해질 수 있기에, 헌혈하기 하루 전에, 스스로를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헌혈자는 헌혈의 집이나 헌혈차에서 제공하는 의무 혹은 권고지침을 따라야 한다. 대부분의 혈액 은행에선 잠재적 기증자가 헌혈하기에 앞서 물과 음료수를 충분히 마실 것을 권하며,[1][2][3] 또한 카페인이 든 음료는 마시지 않는 것이 좋으며,[3] 또한, 잘 먹어 두어야 헌혈로 비롯되는 무기력증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1][2] 또한, 철 성분이 많은 음식을 먹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헤모글로빈 수준이 낮아 혈액 비중이 낮으면 헌혈자는 일시적으로 부적격자가 될 수 있다.[1][2][3] 어떤 나라는 적합한 선별을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으며, 이때 기증자는 헌혈에 앞서 스스로를 잘 보살피고 충분히 금식할 것을 준수해야 한다.[3]
 
적합선별[편집]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헌혈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적합 선별을 강제로 받게 했다. 과거에,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는 인종, 민족, 지역에 따라 헌혈 그룹을 분리하였다. 이런 기반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헌혈자들의 그룹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런 관례는 없어졌고, 헌혈자 특성의 경우 질병이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지, 질병에 대한 효력 기간은 얼만큼인지만 고려된다.
 

 


1940년대 당시의 로열 멜버른 병원에서 헌혈.
다른 헌혈자 특징은 또한 다음과 같이 고려된다: 1985년에 시작한, 미국 적십자사와 미국 식약품관리국의 정책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특히 "1977년 이후로 다른 남자와 한 번이라도 성교를 한 남자",[4], 정맥주사 치료 (HI) 약물 사용자,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 (HIV) 감염율이 높은 나라에서 최근에 이주한 사람에게 헌혈을 금하였다. 금지 목록에 있는 사람과 성교한 사람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식약품관리국과 적십자사는 공공 정책이 헌혈로부터 공급받는 혈액을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와 같은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금지의 정당화를 언급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공급되는 모든 혈액은 검사를 받고, 또 성적으로 활발한 이성애자들은 무조건 헌혈이 금지되기 때문에, 금지는 곧 차별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에는 다양한 정책이 있다. 이를테면, 예전의 호주는 비슷한 금지를 했지만, 이제는 1년 이전에 남성끼리 성교를 가졌던 사람에게만 헌혈을 금한다. (공급된 혈액의 성분을 검사하는 HIV 혈액 검사에서 일반적으로 항체미형성 기간보다 더 길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에서 중요한 헌혈자의 적합 요구사항은 인간 광우병 (vCJD)에 대한 걱정과 맞물려 있다: "광우병"이 일어난 나라에서 오래 거주한 사람은 헌혈에 적합하지 않음을 발견한다.[5] 적합선별 인터뷰의 일부로, 헌혈자는 1980년 이전까지 배제 목록의 나라에 거주했는지 질문을 받았다. 거주 나라의 목록은 대부분의 서유럽 (과거에 영국에서 거주했던 사람은 강력하게 제한됨), 터키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3국 (이것들은 예전에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분)을 제외한 모든 동유럽을 포함하여 잠재적인 헌혈자를 부적격자로 판별한다. 1980년부터 1996년까지, 만약 한 번이라도 배제 목록의 나라에 방문하거나 거주한 사람은 금지 기간이 5년 더 추가되어 헌혈에서 배제되었다; 영국에서 3개월 이상 시간을 보냈다면, 부정확한 보균자이다. 이 규정은 미국 육군과 다른 군대의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1980년에서 1996년동안 유럽 국가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하거나 영국에서 3개월 이상 근무한 사람은 헌혈이 금지되었다.[6] 인간 광우병를 고려한 것과 비슷한 정책은 퀘벡 주와 캐나다 혈액원에 적용되었다.[7]
 
헌혈자가 헌혈 장소에 도착했을 때, 일반적으로 적격성을 판별하는 "배제 설문지"에 답변하는 것처럼 동의서 형식을 작성한다. 질문은 헌혈자의 나이, 몸무게, 마지막으로 헌혈한 날짜, 현재 건강 그리고, 문신, 의약품 사용, 해외 거주, 최근 국제 여행, 성교 내역과 같은 다양한 위험 요소를 포함한다.
 
대한민국에선 설문지를 작성한 후, 비중검사와, 혈액형에 대한 검사를 하고 있다:
 황산구리 선별검사 ("부유 검사"): 황산구리 용액에 떨어뜨려서 기증자 혈액의 비중을 측정한다. 이 용액은 눈금을 재서 12.5 g/dl (미국에서 헌혈의 기준치) 보다 더 가라앉는 혈액의 농도이어야 한다.
 
모든 혈액은 나중에 성병 (STD)을 포함한 질병을 검사한다. 만약 질병이 발견되면, 헌혈자에게 이를 알리고 혈액은 버려진다. 혹은 개인이 6시간 이내로 자진배제를 신청할 수도 있다. 개인은 어떤 성병/질병을 알아내려 하는 목적으로 헌혈하는 것은 추천되는 방법이 아니며, 법에도 저촉될 수 있다. 혈액은 질병이 유행할 때 서나일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 질병도 추가적으로 검사할 것이다.[8]
 
헌혈[편집]
 

 


소독, 캐뉼러 삽입, 캐뉼러 당김, 상처 지혈.
헌혈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헌혈자는 쿠션 의자와 팔걸이가 있는 곳에 드러눕는다. 안쪽 주관절은 소독되고, 캐뉼러는 정맥에 삽입된다. 헌혈자는 가끔 팔 주변를 억누르는 지혈대를 매거나, 과정을 빨리 끝내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혈액은 정맥으로부터 흘러, 바늘과 고무관을 통해, 뽑힌 혈액의 양을 측정하는 작은 저울 위에 놓인 특별한 수집 봉지에 들어간다. 혈액 봉지가 충분히 채워진 뒤에, 몇 가지 검사 고무관은 동일한 바늘로부터 질병을 발견하기 위해 피를 뽑아낸다. 대한민국에선, 320 ~ 400 밀리리터정도의 혈액을 채혈한다.
 
성분헌혈[편집]
 

 


상대적으로 큰 바늘은 전혈에 사용된다.
헌혈자는 가끔 다른 성분은 보존하고 어떤 혈액 성분만 기증하는 선택을 한다. 이 과정은 성분헌혈로 알려져 있고 더 복잡하고, 시간이 전혈보다 더 많이 걸리며, 더 많은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다. 성분헌혈의 장점은 원하는 성분을 더 응축하거나 제거할 수 있고(예를 들어 말라리아 잠재위험 지역에서 군복무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같은 경우 혈구를 제외한 혈장성분만 헌혈이 가능하다), 헌혈자는 일반적으로 전혈을 했을 때보다 확실히 자주 헌혈을 할 수 있다(대한민국의 경우 2주후 성분헌혈이 가능하다). 어떤 경우에, 제거된 성분의 유용함은 혈액형에 민감하지 않는 것이다(혈액형은 적혈구의 응집자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성분헌혈의 방법은 기증자로부터 전혈을 뽑아서, 성분을 분리해서 혈액을 원심분리한다. (더 많은 정보는 성분헌혈을 볼 것) 요구되는 성분(예시 혈소판, 혈장)은 따로 모이고 나머지 성분은 혈액 응고방지액과 같이 헌혈자에게 되돌려준다.
 
회복[편집]
 

 


기계적 받침대는 응고를 방지하기 위해 혈액 주머니를 기울이고, 현재의 부피, 1분마다 흐르는 양을 표시한다.
헌혈을 마치면, 헌혈자는 약 10분 정도 지혈을 위해 헌혈한후 잠시 대기한다. 음료수와 분식은 혈액양과 혈당, 여러 영양분들을 회복하기 위해 제공된다. 가끔 헌혈자는 헌혈후 현기증과 실신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정상이 될 때까지 몇 분 동안 앉아 있을 것을 권장 받는다. 어떤 나라에서, 스티커는 헌혈자의 기간과 권장 사항을 보여주기 위해서 헌혈자에게 붙인다. 전체 과정은, 적합 식별로부터 회복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실제 헌혈은 전혈에서 4~15분 정도 걸린다(성분 헌혈의 경우, 혈장은 약 30분, 혈소판은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헌혈자는 다음날까지 무리한 운동, 사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혈장양은 보통 하루 정도면 회복되지만, 적혈구 세포는 골수에 따라 순환계에 회복되기까지 3~5 주 정도 걸리고, 손실된 철분의 회복은 6~8 주 이상 걸린다. 이 회복 과정은 복합 탄수화물, 철분, 다른 미량의 무기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해서 빨라질 수 있다. 철분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헌혈자는 헌혈한지 8 ~ 12 주 정도(정확한 기간은 국가에 따라 다양함)가 지나야 전혈한 만큼의 철분 농도가 된다. 미국에서는 혈장과 혈소판에서 기다리는 기간은 성분 헌혈자가 112일이 될 때까지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헌혈할 수 있는 기간은 전혈일 때 두 달 정도 뒤이고, 성분 헌혈일 경우에 2주일 뒤이다.
 
보관[편집]
 
적혈구 세포는 냉동보관으로 특별하게 보존되어, 10년 동안 보관할 수 있다. 세포는 40% 글리세롤 용액에 처음으로 배양해서 세포 안에서 얼지 않는다. 혈액 봉지는 -60 °C보다 낮게 냉동된 특별한 무균 상자 속에 보관한다.
 
아기에 적합한 헌혈자[편집]
 
작은 확률로 성인은 응급실의 어린이, 신생아, 태아를 위해 헌혈할 수 있다. 면역 체계가 완성되지 않은 것을 포함하여, 어린이 환자에게 수혈하는 혈액의 안전이 확실하면, 병원은 감염을 막기 위해 모든 예방 조치를 취하고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9]가 음성임을 보장하는 특별하게 검사 받은 어린이 혈액 봉지는 사용하기에 알맞다. 왜냐하면 신생아나 체중이 낮은 아기가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로 감염될 수 있는 데,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태아가 위험하거나 심지어 치명적일 수도 있다. 추가적으로, 특정 장애를 지닌 어린이 환자나 응급실 어린이는, 교차 적합시험을 수행하기에 시간이 없으면, 오직 O 형/Rh - 혈액만 신생아 수혈로 사용할 수 있다.[10] 이런 특별한 제한 때문에, 아기에게 적합한 성인 기증자는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의 검사가 반드시 음성이어야 하고, 적십자사와 같은 어떤 혈액 수집 기관은 혈액형 O Rh -[출처 필요]인 아기에게 적합한 헌혈자가 필요하다. 미국 성인의 7%만 O -이고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는 성인은 15% 보다 적으므로, 성인의 1%만 아기에게 적합한 헌혈자로 인정 받을 수 있다. 다른 제한 (몸무게,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 상태, 인간 광우병 등)은 잠재적 아기에 적합한 헌혈자의 확률을 0.5% 이하로 낮춘다. 성인이 홍역, 이하선염, 풍진, 수두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사람의 상태는 아기에게 적합한 헌혈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복합 수술이 요구되는 신생아는 첫 주 동안에 20개 이상의 혈액 봉지가 필요하기도 한다.
 
단점[편집]
 
비중과 혈액형을 검사하기 위해 손가락을 바늘로 찌르거나 채혈 바늘을 삽입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약간의 불편함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사혈의(피를 뽑는 의사)에게는 어떤 헌혈자로부터 충분한 혈액을 얻는 것은 어려운 경험일 것이다.
 
헌혈 동안이나 이후에, 혈량저하증은 때때로 현기증이나 기절을 동반하여 혈압을 떨어뜨린다. 어떤 경우에 헌혈을 취소해야 할 수도 있으며, 혈액의 양을 회복하는 정맥 주사 주입이나, 헌혈자가 ("다리 올림"이라고 불리는 들것에) 트렌델렌부르크 자세를 취한다. 음료수는 혈액양을 보충할 수 있게 하고, 헌혈자는 감시관이 관찰하는 동안 수평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대부분의 헌혈 은행은 기증자가 헌혈 이후에 혈액 손실을 조정하고 이런 문제들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종종 과자와 음료수를 동반해서) 몇 분 동안 쉴 것을 권한다.
 
1% 보다 낮은 확률로, 바늘을 잘못 삽입할 경우 일주일 뒤에 팔에 멍이 생긴다.[11]
 
헌혈에서 음성적인 의학적 부작용은 거의 드물고, 혈액 은행 직원은 그런 부작용에 대응하도록 교육 받는다.
 
장점[편집]
 
헌혈은 심장병의 위험[12]을 줄이고 적혈구 생산을 자극한다. (혈액색소 침착증 때문에) 또한 철분이 넘치는 경향이 있는 환자들이 헌혈을 하면 철분이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알림: 이 경우에 미국 적십자사는 혈액색소 침착증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헌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13])
 
혈관 속에 흐르는 독성 화학양(보기: 수은, 살충제, 방화제)은 기부한 혈액에 포함되어 줄어든다.[출처 필요] 일화로, 건강한 중년의 사람은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면 감각적으로 활기차게 된다는 보고가 있다.[출처 필요]
 
자가조직 기증[편집]
 
(일반적으로 수술 계획에 따라) 나중에 수혈이 필요하다고 예상되는 사람은 자가조직 기증을 할 수 있어서, 혈액은 보관되고 나중에 헌혈 본인에게 수혈 받는다. 게다가 (특히 드문 혈액형의 환자는 더욱 중요한) 호환 혈액의 유용성을 확실하게 하는 이 과정은 감염된 헌혈자로부터 질병 전염의 위험도 없애 준다.
 
헌혈 유공[편집]
 
대한적십자사에서는 적십자 혈액사업에 공적이 있는 다회 헌혈자들을 대상으로 헌혈유공장을 수여하고 있다. 기준은 30번 이상 헌혈시 현혈유공장 은장, 50번 이상 헌혈시 현혈유공장 금장을 수여한다. 100번 이상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매년 6월말까지의 기준으로 유공 심사를 하며, 대한적십자사 창립 기념일인 10월 27일날 포상을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posted by 부드러운보컬

현미의 장점과 단점

자유로운 2014. 2. 11. 16:48

현미의 장점과 단점

 

현미(玄米)는 벼의 왕겨를 벗겨낸 상태로 도정되지 않은 쌀(매조미쌀, 핍쌀)이다. 아직 씨의 형태이기 때문에 재배하면 싹이 나온다.
 
백미보다 비타민이나 식이섬유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탄수화물이 낮기 때문에 건강식품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또, 씨리얼 식품으로 가공되기도 한다.
 
'백미보다 농약이나 제초제 성분이 겨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다'라든가 '유기재배, 무농약, 저농약 현미가 안전하다'라는 설이 있으나 잔류농약 검사는 현미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잔류농약은 정해진 대로의 사용법을 준수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미는 백미보다 단단하기 때문에 압력솥으로 밥을 짓거나 죽으로 만들어 먹는 조리법이 적당하다. 하룻밤 정도 물에 불려 일반 밥솥으로 밥을 지어도 된다.
 
겨에는 킬레이트 작용이 강한 피트산(phytic acid)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피트산은 미네랄과 결합해 피트산염이 된다. 이로 인해 현미를 다량으로 섭취하게 되면 체내에 미네랄이 흡수되지 못하여 미네랄 결핍을 일으키게 되고, 미네랄 부족(철, 칼슘, 마그네슘, 아연)을 일으킬 수 있다. 현미를 먹을 때는 대량의 야채를 먹거나, 우유를 마시거나, 깨소금을 뿌리는 등의 방법으로 미네랄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posted by 부드러운보컬

이태원에서 스파게티를 먹다 맘마

맛집후기 2014. 2. 9. 08:00

 

예전에 한창 추울때 이태원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조그마한 맘마를 갔어요.

보는것보다 훨씬 예쁘고 맛있다는것! 그리고 친절하다는것!

이것이 장점인듯하네요.,

자주가지 않는 곳이지만 그래도 여러분에게 한번 소개시켜드립니다.

이태원시장 맨끝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 잘 찾아보세요~~!~!!

위치를 정확히 모르니까! 다른 블로그 확인은 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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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경복궁과 청계천까지

추천여행 2014. 2. 7. 18:59

 

서울시내 경복궁과 청계천까지 다양한 곳으로 사진찍으로 갔는데요.

dlsr 50d 와 2470렌즈를 이용했는데..

노출중에 망한걸 먼저 올립니다.

천천히 서울시내를 돌아다니면 포스팅할 계획인데 여러분들도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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